2017년

[스크랩] 국회와 짜고 왕을 죽였던 크롬웰과 사형판결에 관여했던 법관들의 최후

newgopjh75 2017. 3. 22. 11:09

정치 - 일간베스트

국회와 짜고 왕을 죽였던 크롬웰과

사형판결에 관여했던 법관들의 최후

어쩌면치매간병

http://www.ilbe.com/9582180236

2017.03.19 21:07:10 (*.99.*.3)

 

1658년 크롬웰은 말라리아에 걸려 급사하였다. 나이 59세였다.

아들이 호민관 자리를 승계하였으나 오래 가지 못하였다.

의회의 결정으로 왕조 회복이 이뤄졌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다시 영국의 으로 추대되었다

찰스 2세가 맨 처음 한 일은 크롬웰에 대한 복수였다.

 

일종의 국립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던 크롬웰의 시신을

꺼내 부관참시를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처형된 날인 130일에 크롬웰의

머리를 잘라내 창에 꽂아 웨스트민스터 홀의 바깥에 세워 두게 하였다.

 

크롬웰의 머리는 그 뒤 24년간 걸려 있었다.

1685년 이후 크롬웰 머리는 여러 사람 손을 거치고 경매에 붙여지기도

하였다


해골이, 캠브리지에 있는 시드니 서섹스 대학

(캠브리지 대학 소속. 청교도가 세운 학교. 크롬웰이 다닌 적이 있다)

교회에 묻힌 것은 부관참시 400년 뒤인 1960년이었다

 

찰스 1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데 관련된 판사 등

59명 중 생존자 31명이 보복을 당하였다.


12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19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범죄는 대역죄였다

 

크롬웰은 부관참시 후 머리를 잘라 24년간 거리에 매닮.

59명이 관여했는데., 판사 등 생존한 31명 전원 중 12명은 교수형,

나머지는 종신형.


[출처] 국회와 짜고 왕을 죽였던 크롬웰과

사형판결에 관여했던 법관들의 최후

[링크] http://www.ilbe.com/9582180236

*********************************

◀역사의 생명▶


오늘이 가면 어제로 글피로 겹겹이 묻혀 지기기에

세월이 흐른 후 까마득히 잊어지는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한생(一生)도 아닌 찰나(刹那)라 소홀히 여기지 말 것은

찰나는 작고 미약하여 인간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그 생명력은 강하고 장대하여 인류역사 종말이 온다한들

불변의 화신처럼 더욱 확연히 우리 앞에 나타나리니

 

시대를 호령함에 어깨세우고 거만 떠는 자여

역사를 일구어가는 자칭 선지자라 자부하느냐

네 눈으로 보이는 것은 하찮은 아랫것들일지라도

그들은 세월의 찰나같이 숨은 강한 생명력의 근본이요

네 위로는 세상사 역사를 주관하는 엄위하신 분이 있어

네 일거수일투족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면

 

거만치 말고 겸손하며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인류 공존공영의 묘를 살려 행하라

그리하면 네와 네 후사와 만인이 화평을 노래할지니

 

역사는 묻혀 가는 것이 아니요 살아 크게 요동치고 있으며

그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2017. 03. 21.

한국호국보훈선양회

회장  權相  박 용 호




출처 : 대한민국월남전참전국가유공자전우회
글쓴이 : 글벗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