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스크랩] 奉泰弘(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며

newgopjh75 2014. 1. 21. 00:52

奉泰弘(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며

광우병 暴亂 등 고비마다 온 몸을 던져 싸운 애국투사의 명복을 빈다.
Written by. 裵振榮   입력 : 2014-01-20 오전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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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파운동가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 몇 년 전부터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얼마 전부터는 위중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얼마 전 보수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다. 그때 나는 “좌파들은 자기 쪽 사람이 죽으면 '민주시민장'이니 뭐니 하면서 크게 하는데, 우리도 봉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 '애국국민장'으로 크게 모셔야 한다”고 말했었다.

 奉 대표를 알게 된 것은 11년쯤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노무현이 당선된 후, 대선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우파 젊은이들의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종로 사직공원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던 것 같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生業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애견잡지를 한다”고 대답했다.

 ▲ 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


 이후 10년. 애국운동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는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장판교의 장비'였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남북축구대회 때에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앞에서 태극기 사용을 가로막는 盧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종북시위대가 던진 돌에 머리를 다쳤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시위를 계속 했다. 2008년 광우병폭란 때에는 청계광장 시위대들 앞에서 당당하게 광우병 시위가 왜 엉터리인가를 지적하다가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겉멋 든 얼치기 좌파들이 헛소리를 하면, 그는 반드시 고소 고발로 응징했다.

 봉 대표는 정치에 뜻이 있었다.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투사(鬪士)’보다는 명사(名士), 박사(博士), 고시족을 편애하는 한나라당에 가방 끈 짧은 그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래도 꿈을 이루어보겠다고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괄괄한 성격 탓에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다. 한번은 우파시민단체를 하고 있던 친구가 “봉태홍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태홍 대표 안 좋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폭란 때, 광화문 한 복판에서 좌파들과 멱살잡이 하면서 싸운 것은 봉 대표밖에 더 있나? 한나라당 사람들이나 우파시민운동 한다던 교수들, 변호사 등 정말 대한민국으로부터 혜택 받고 대한민국을 위해 나서야 할 사람들이 모두 몸 사리고 있을 때, 봉 대표만큼 투쟁한 사람이 누가 있나? 광우병 폭란 때 싸운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나는 봉 대표를 높이 평가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만한 투사가 없다. 봉태홍은 애국자다.” 그 친구도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했다.

 봉태홍 대표는 매일 아침 이-메일로 라이트코리아의 활동을 알리거나 종북좌파를 규탄하는 성명을 보내오곤 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깐이나마 나라 걱정하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뜸해졌다. 그리고 그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번 문병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병석의 그를 찾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파운동을 한다는 것은 봉태홍처럼 사는 것이다. 돌팔매질 당하고, 멱살 잡히고, 구치소 가면서, 온갖 중상을 받으면서 사는 게 우파운동가다. 이른바 아스팔트우파들이 종북좌파들과 박 터지게 싸운 덕에 정권을 잡은 자들이 호의호식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근근이 벌어오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애국우파다. 좌파에서 전향한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청와대로, 정부로, 여의도로 진출할 때, ‘수구꼴통’이니'이니, '아스팔트우파는 품위가 없다'느니 하는, 경멸과 조롱을 당하는 게 아스팔트 우파다. 어쩌다 정치에 뜻을 두고 한나라당(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해도 노무현 좌파 정권 아래서 잘 나가던 영혼 없는 관료 나부랭이들에게 밀려 그가 낸 공천서류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다.

 봉태홍 대표의 부음과 함께, 500일 동안 옥인교회에서 탈북자 북송반대농성을 벌이다가 공무집행방해로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강재천씨가 벌금을 못 내서 80일간 노역장 유치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는 변호사에게 “누구도 내 벌금을 代納해 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봉태홍, 강재천씨 뿐이 아니다. 잘 나가는 골프강사였던 장기정 자유청년연합대표는 우파 운동 10년 동안 前過만 생겼다. 봉태홍 대표의 빈소에는 내일 저녁에나 찾아가야겠다. 거기 가면 아스팔트우파들이 많이 와 있겠지. 소주 좀 마실 것 같다. 착잡하다. 봉태홍 대표의 冥福(명복)을 빈다.

裵振榮(월간조선 기자)

출처 : 서울시 재향군인회
글쓴이 : 안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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